전례상식_29(뜻을 알면 전례가 새롭습니다)
뜻을 알면 전례가 새롭습니다(39가지 전례상식). -정의철 신부님 지음-
부활초에 왜 여러 가지 표상을 새기나요?
‘모든 전야제 중의 어머니로서 주님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신 거룩한 밤을 기념하기 위해 기다리며 지새우는 밤’(탈출 12,42; 루가 12,35 참조)인 부활 성야의 전례는 크게 ‘빛의 예식’, ‘말씀 전례’, ‘세례 예식’(세례 서약 갱신식), ‘성찬 전례’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날 교회는 ‘빛의 예식’ 부분에서 불 축복과 함께 부활초 점화를 통해 부활초에 담긴 의미를 보여 줍니다.
먼저 사제는 성당 바깥에 준비해 놓은 불에 축복을 하게 되는데, 이때 활활 타오르는 불은 구약(탈출 3,1-6)에서와 같이 하느님의 출현을 뜻하며, 영원하신 성삼위의 지극히 거룩하심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부활초를 준비하면서 사제는 부활초에 여러 가지 표상을 새깁니다. 먼저 위에서 아래로, 왼편에서 오른편으로 십자가를 긋고, 그 십자가 위와 아래 부분에 그리스어의 첫 글자와 마지막 글자인 알파(Α)와 오메가(Ω)를 씁니다. 이것은 요한 묵시록 1장 8절에 있는 바와 같이 ‘영원’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영원을 표시하는 두 글자 사이에 그 해(年)의 연수를 표시하는데, 이 뜻은 하느님의 영원하신 섭리에 의해 우리에게 주어진 그 해가 세대의 주인공인 주님께 속해 있음을 말해 줍니다.
마지막으로 다섯 개의 향 덩어리를 부활초에 새겨진 십자가에 꽂는데,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입으신 다섯 상처를 드러내 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하느님이시고 참 인간이심이 십자가와 다섯 상처로써 상징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부활초에 여러 가지 표상을 새김으로써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어떤 분이시라는 사실이 더욱 뚜렷이 드러나게 됩니다. 이 표상들은 영원하신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고 십자가상에서 죽으셨으나, 이 십자가의 다섯 상처에는 우주와 시간의 구원이 달려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 죽음과 부활을 통해 세상의 빛과 생명, 만물의 시작과 현재와 끝, 영원한 영광과 통치권을 지닌 주님이 되셨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부활초에 새겨지는 표상으로 그리스도의 초상은 완성되고, 사제는 하느님 출현의 표지인 활활 타는 새 불꽃에서 불을 붙여 부활초에 불을 댕깁니다. 이는 신성과 인성의 결합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초에서 영광스럽게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하신 본성과 그 내적 모습을 보아야 하고, 그에 대한 희열을 깊이 체험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