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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사순특강 2강(15_03_04) 요약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자 : 2015.03.07 조회수 : 1020

사순특강 제2강은 벨라뎃다 수녀님께서 호세아서에 나타난 하느님의 사랑을 주제로 하셨습니다.

 

시작기도는 기도 공동체성가 340번 하느님의 사랑 오 신실하신 주를 노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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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언자 호세아의 소명

   구약시대에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하는 많은 예언자들이 있었다.

   많은 예언자 중 호세아는 다른 예언자들과 달리 특별히 혼인을 소명으로 받는다.

   평범한 결혼이 아니라 창녀 고메르를 맞아들여 결혼하라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호세아 예언자에 대한 정확한 이력은 없지만 성경의 행간의 의미들을 파악하여 볼 때,

   호세아는 정의롭고 하느님을 충실히 섬기는 반듯한 젊은이, 그 호세아와 창녀와의 결혼...

   만약 여러분의 자녀가 이런 결혼을 한다면?... 죽을 힘을 다해 말렸을 것이다.

   호세아는 다른 예언자와는 달리 이런 결혼의 소명을 받았다.

 

2. 혼인과 간음 - 계약과 우상숭배

   호세아서에 1~2장을 보면 두 가지 내용을 함께 담고 있다.

   호세아와 고메르는 혼인을 하지만, 호세아의 아내는 간음을 하는 부정한 짓을 하게 되는 내용과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은 계약을 맺고 있지만,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을 버리고

   바알신을 우상숭배하는 두 가지 내용을 함께 담고 있는 구조로 되어있어,

   이를 병행구조라 한다.

 

  이 호세아가 받은 특별한 소명이 혼인인데,

  우리는 혼인의 의미와 어떻게, 무엇을 근거로 결혼생활을 하게 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그 근거로 창세기 218절을 보면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

  그리고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그런 여인만이 그의 대등한 협조자가 될 수 있다.’

  ‘하느님께서 이 여인을 창조하신 것은 그를 이용하여 창조해 주셨다.

  그래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사랑으로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이 된다.’고 창세기 224절에 기록되어 있다.

  한 몸이 된다는 것, 인간의 성욕은 상호간 사랑에 상부상조하도록 하느님께로 초대받은 두 남녀가

  육체결합을 통해서 비로소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원죄를 짓게 된 아담과 하와 이후, 결혼생활에는 고통이 오게 되고 서로 지배하려는 유혹이 도사리고 있다.(창세3,16)

  그러나 그러한 결혼생활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살아있는 세상 모든 사람의 어머니에게는 출산력이 하느님 축복의 의미가 된다.

  땅을 지배하고 자식을 낳아 번성하기 위한 하느님의 모성대로 창조된 남자와 여자를 사실상 부부라 한다.

  이와 같이 성경에는 혼인제도의 이상이 인류역사의 시초부터 하느님에 의해서 정립되었다.

 

  어느 할머니 수녀님께서 결혼한 언니에게 이 세상 보속 중에 가장 큰 보속이 무엇인지 아냐?’고 물으시고는

  혼배보속이 제일 크다고 말씀하셨다 합니다. 이 이야기 안에 녹아있는 것은 혼인생활의 어려움, 고통 등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마태오복음 196절의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

  이 주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갖은 유혹을 물리치고 노력하며 살아가는 결혼하신 신자 분들의 모습을 볼 때 존경의 마음이 든다.

  특별히 어머님들의 인내와 사랑에..., 감히 범접하지 못할 특별한 것이 느껴진다.

  이 시간 우리는 혼인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껴보려고 이 자리에 모였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우리가 혼인생활을 하면서 참다운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고,

  도움을 주시도록 청하면서 기도했으면 한다.

 

  간음에 대해서 말씀드리면,

  간음은 혼인 밖의 성관계라는 단순한 현실을 넘어서, 당사자의 배우자와 자녀들 그리고 온 가족들에게 상처를 주게 되고,

  그들의 생명을 부서트리게 하는 작용을 하게 된다. 당사자 또한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창조주께서 주신 생명은 존귀한 것인데 간음은 다른 사람의 생명까지 부서트리므로

  하느님을 거역하는 중죄가 되는 것이다.

 

  계약

  계약은 인간들 상호간의 법률적, 사회적 관계를 정의하는 용어로 쓰이는데,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로 표시하는 용어로 쓰여 지고 있다.

  상호 평등한 입장에서 맺는 계약, 결혼도 평등한 계약에 포함된다.

  또 강자가 약자의 보호를 약속하고, 약자는 강자에게 봉사를 서약하는 불평등한 계약도 있다.

  고대동방에서 많은 사례들이 보여 진다.

  이런 계약을 맺을 때 동물을 두 토막 내어놓고 계약당사자가 피가 흐르는 두 토막 사이를 지나가는 의식의 사례를 볼 수 있는데,

  그 의미는 계약을 어기면 이렇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계약을 지켜야 한다는 엄정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하찮은 이스라엘 민족을 계약의 상대자로 선택하시어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탈출을 시키고,

  광야의 체험을 하게하고 하느님과 계약을 맺어 사랑하시는 모습을 탈출기에서 볼 수 있다.

  탈출기 19장을 보면, ‘이제 너희가 내 말을 듣고 내 계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들 가운데 나의 소유가 될 것이다.

  온 세상이 나의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서 소유라는 말이 나오는데, 소유는 소중한 보물을 의미한다.

  하느님의 소유, 하느님의 사랑하는 소중한 보물이 되는 것이다.

  하느님과 하느님의 소중한 보물과 같은 존재가 맺은 계약이, 여기서 말하는 이 계약이다.

  계약의 효력을 발생하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께서 주신 계명과 법규를 지켜야 한다.

  하느님께서 주신 십계명을 지켜야 한다.

  계명을 어기는 것은 하느님께 중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3. 하느님과 호세아 예언자와의 이야기

  호세아가 살던 기원전 8세기경의 국내외적 정세는 무적 불안정한 시기였다.

  도덕적 타락, 사회정의 부제, 지도층 타락..., 폭력, 사기, 거짓, 간음, 성전매음까지 성행했던 시기였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세상은 어떠한가.

  물질만능 주의, 쾌락주의, 성공주의가 우리시대에 만연해 있는 것 같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중요한 모든 것, 하느님까지도 저버리는 무서운 세상에 살고 있다.

  인간은 하고자 하는 것, 원하는 것이 자신의 운명을 만들어 간다

  물질을 원하는 사람은 물질의 목소리를 듣게 되고,

  영혼은 열망하는 사람은 영혼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우리는 누구를 믿는지, 어떤 목소리를 듣고 있는지, 누구에게 속해 있는지, 누구에게 복종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호세아로 돌아가 보면

  호세아가 바라본 세상은 너무나 엉망진창이었다.

  주님의 사제와 백성은 주님을 저버렸고, 이스라엘 성전사제들은 창녀와 지냈고, 사람들이 만든 우상에 절을 하고...,

  이런 세상을 보며 호세아는 하느님께 하소연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느님의 목소리가 들였다.

  하느님께서 너는 가서 창녀와 창녀의 자식을 맞아들여라. 이 나라가 주님에게 등을 돌리고 마구 창녀 짓을 하기 때문이다.’(호세 1,2).

  호세아는 소명을 받아 창녀 고메르를 아내로 맞아들인다.

  신혼인 호세아는 일을 마치고 일찍 돌아와 사랑을 나누고 행복한 날을 보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고메르에게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다.

  첫째 이즈르엘, 둘째 로 루하마, 셋째 로 암미를 낳게 되는데, 이 아이들은 호세아의 자식이 아니었다.

  고메르는 집을 비우 날이 많아졌고, 급기야 집을 나가 버린다.

  호세아는 아내를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정부와 정을 통하는 고메르를 발견한다.

  호세아는 자기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엄청난 분노를 갖게 된다.

  호세아의 독백은 이러했을 것이다.

  ‘그 분노를 어떻게 형언할 수 있겠습니까.

  고메르는 나와의 사랑은 아무것도 아니란 듯이

  다른 남자와 있으면서 행복을 느끼는 것에서 오는 배신감.

  나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엄청난 분노와 좌절을 느끼면서

  그때 나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느끼셨을 분노와 아픔,

  고통스러운 마음이 그대로 내안에 스며 들어옴을 느꼈습니다.

  그분의 마음을 내 엄청난 결혼생활의 고통과 체험을 통하여 알게 되었습니다.’

  호세아는 결혼생활의 어렵고 처절한 고통을 통하여 하느님의 마음을 절절이 느끼게 된다.

  호세아는 이런 마음이 들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한다.

  ‘결혼이란 것이 이렇게 아픈 줄 알았으면 주님께서 명령하실 때 끝까지 싫다고 거부했을 걸하고...

 

  앞에서 혼인이야기를 하였는데...

  서로 사랑하십니까? 어떻게 하면 참사랑을 할 수 있을까?

 

  호세아도 신혼 초에 한 사랑은 쉬웠고 자연스러운 사랑을 할 수 있었으나, 다른 남자와 정을 통하고,

  집을 나간 이후 호세아는 엄청난 분노와 좌절을 체험 하게 된다.

  호세아는 결심을 하게 된다. 고메르가 나가도록 내버려 주지 않겠다고,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그녀를 찾아 와야 되겠다고 다짐을 한다.

  그녀는 호세아에게 보물인 것이다.

  호세아 고메르의 정부를 찾아가 애원하고, 대가를 요구하는 그에게 전 재산을 주고 고메르를 찾아온다.

  호세아는 고메르에게 다시 시작하자고 한다.

  고메르는 미안한 마음과 이렇게 당신을 아프게 한 나를 다시 사랑해 주어서 고맙다고,

  그러나 자신은 아내가 될 만한 자격이 없다고 한다.

  호세아는 40일간 광야로 나아가 고독 가운데 당신을 영원한 나의 아내로 맞아들이겠다고 결심하며 청한다.

  이후 고메르는 어떻했는가? 또 다시 호세아를 배반한다.

  호세아는 하느님께 아직도 저런 여자에게 희망을 가져야 합니까?’하고 묻게 된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다시 가서 다른 남자를 사랑하여 간음을 저지르는 여자를 사랑해 주어라.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랑한 것처럼...’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추억을 생각하신다.

  ‘나는 이스라엘이 어린아이였을 적부터 그를 사랑하였고 이집트에서 불러내었다.

  그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주고, 팔로 안아주곤 했었지. 그러나 그들의 신의는 구름과 같고, 이내 사라지고 마는 이슬과 같았다.

  그들이 배반할 때마다 인정에 끌려 사랑에 줄로 끌어안았지만,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어지려고만 하는 구나.

  내가 이스라엘을 버리겠느냐.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복받쳐 오는 구나.

  그러니 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하지 않고, 그를 다시는 멸망하지 않으리라.

  나는 사람이 아니라 너희 가운데 있는 거룩한 야훼이기 때문이다.’

  계속 부정을 저지르는 고메르를 맞아들이는 호세아, 그리고 하느님.

  고메르에게 애착을 가지고 아내로 받아들이는 것은 일방적인 사랑이다. 응답이 없는 사랑.

  호세아서 3장에 보면 고메르가 부정을 저지르는 시간에도 호세아는 아내에게 애정을 드러내 보인다.

  이 사랑은 단순한 성적인 행동이나 법적인 재결합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곤경에서 타락에서 늪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고 고쳐주는, 부정한 아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주는,

  진정한 아내로 돌아오도록 하는 사랑의 의미를 나타낸다.

  이스라엘이 죄악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음에도

  당신의 백성 품으시는 애정 또한 호세아의 그 마음과 같다

  주님의 사랑이 그들을 구원한다.

  호세아는 부부생활을 통하여 하느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의 마음을 체험하게 된다.

 

  로마서에 바오로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렇게 얘기한다.

  ‘우리 죄 많은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때가 이르러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죽으셨습니다.

  옳은 사람을 위해서 죽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혹 착한 사람을 위해서는 죽겠다고 나설 사람이 더러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죄 많은 인간을 위해서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확실히 보여주셨습니다.’

 

  호세아는 고메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였고, 당신 백성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을 이입하여 그것을 표현하였다.

  호세아서의 사랑은 분노, 분개를 극복한 사랑이고, 고통에 의해 다듬어지는 사려깊은 사랑이다.

  호세아는 자신의 비극적 결혼생활 체험을 통하여 하느님을 더욱 체험하게 되고,

  개인적이고 인격적 내적 친밀한 관계를 맺게 되고, 이스라엘의 남편인 주님의 고뇌와

  주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게 된다.

 

4. 호세아서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의미

  우리는 호세아서를 보면서, 호세아의 결혼생활을 통해서 하느님의 사랑을 알고 느끼게 되었다.

  호세아서 66절의 정녕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신의이다. 번제물이 아니라 하느님을 아는 예지다

  말씀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호세아서가 주는 어떤 의미를 찾게 되는 구절로 택해보았다.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신의와 하느님을 아는 예지라 하셨다.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와 하나 되고, 그 분의 법을 따라야 하는 의무를 가지게 되었다.

  우리는 하느님 가족의 일원이고, 사랑의 무대 안으로 초대받았고, 그분과의 관계를 잘하도록 부름 받았다.

  우리가 주일 미사만 참례하고 신자로서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호세아서 보는 봐와 같이, 온전하게 애절하게 충실하게 사랑하시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중요하다.

  지난 주 주임신부님께서 말씀하신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에 대한 물음은

  하느님과의 관계 안으로 초대하는 것이며, 이 관계 안에 우리가 들어가야 하고, 충실해야 한다.

  우리가 하느님과의 관계가 어떠한지, 도외시하며 살지 않았는지 반성하고,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또 하느님을 떠나 다른 곳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님께서 나 때문에 낙심하고 계시는 않으신지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

  정말 진실한 마음,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슬픔이든 기쁨이든 모든 것을 주님께서 드리는 것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며 친밀한 관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마침기도는 회개의 기도와 588번 노래했습니다.

   * 회개의 기도는 별도로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