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사순특강 제1강 요약정리(3,4)
사순특강 제1강 *1,2에 이어
3. 예수님은 당신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셨을까?
또 당신의 사명을 어떻게 이해하셨을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마르 8,27)
당신이 누군지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묻고 계신다.
* 예수님께서 세 번째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지상에서의 생이 얼마 남지 않은 마지막 길임을 아시는 그때,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하고 물으신다.
‘세상 사람들이 날 보고 뭐라 하더냐?,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더냐?’ 하고 물으신다.
그리고 한참을 걸어가시다가,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생각하느냐?’하고 물으신다.
이것은 내가 누군지를 정의하라는 것이 아니라, 너희와 나와의 관계가 어떠하냐 하고 물으신 것이다.
관계가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 형제..., 아니면 남남...)
예수님의 이 물음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유효한 질문이다.
‘예수님은 나에게 어떤 분이신가?’를, ‘입으로는 주님, 주님하면서
주님을 위해서 구체적으로 어떤 삶을 살았는가?’를 생각해 봐야 한다.
참지 못할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정말로 참을 수 없는 힘든 일을
주님 이름으로, 주님 때문에 참아주고 용서해 준 적이 있는가? 하고...
만약 그 참음과 용서가 있었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끊임없이 나를 일깨워 주시고 이끌어 주셨기에,
그것이 주님을 위해서, 주님과 함께한 행동이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고,
내 삶의 한 부분으로 남게 된다.
‘나는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그 분을 위해서 어떤 삶을 살았는가?‘에 대하여 대답해야 하고,
우리가 그 분께 갔을 때, 내 삶 전체를 그 분께 보여주어야 한다.
베드로는 ‘주님은 저의 모든 것입니다.’하고 고백하고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주님 수난의 시작될 때,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한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 베드로에게 다시 물으신다. ‘베드로야,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하고...
끝까지 ‘주님, 사랑합니다.’는 대답은 하지 못하였지만
자기 삶은 남은 부분을 그에 대한 대답으로 살아간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하는
예수님의 질문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중요한 질문이다.
4. 예수님의 삶(가르침)
‘때가 다 되어 하느님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어라’ (마르 1,15)
하느님 아버지(하느님 나라)를 소개하고, 그 하느님의 나라에로 초대하고 있다.
• 하느님 나라의 특징
1) 밭에 묻힌 보물의 비유 (마태 13,44) - ‘기쁨’
2)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 (마태 20,1-16) - ‘자비’
3) 잃은 아들 되찾은 비유 (루카 15,11-32) - ‘행동’
* 예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끊임없이 하느님 아버지와 하느님 나라를 소개하고, 하느님 나라로 오도록 우리를 초대한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하신 가장 중요한 일이다.
^밭에 묻힌 보물의 비유 - 기쁨
보물을 찾은 기쁨은 마음속에서 샘솟는 넘치는 기쁨이다.
그 기쁨으로 사람은 달라진다.
사소한 것, 이해득실에 마음 쓰지 않으며, 내 것을 내어 주면서도 기쁨을 느낀다.
세상 사람들 눈에는 어리석고 바보처럼 보일지라도 그 사람의 마음속에는 샘솟는 기쁨으로 넘치게 한다.
그것이 하느님 나라의 삶을 사는 큰 특징이다.
그 기쁨이 내 안에 있는가?
우리는 세상에 사는 동안 완전하지는 못하지만 주님께서 주시는 그 기쁨을 시작하고, 느껴보아야 한다.
그 기쁨은 주님에게 있는 것이지 세상의 것이 아니다.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 - 자비
하느님은 참 이상한 분이시다.
주인은 날이 저물어 가는 오후 다섯 시에도 일꾼을 구하러 나간다.
그들의 절박함을 보시고 그들을 일터로 부르신다.
날이 저물어 품삯을 치를 때 이른 아침에 온 일꾼이나 오후 다섯 시에 온 일꾼이나 똑같은 품삯을 지불한다.
그 주인은 앞서거나 뒤에 있거나를 구별하지 않으신다.
몸이 온전한 사람 온전치 못한 사람, 많이 배운 사람 배우지 못한 사람, 부자인 사람, 가난한 사람을 구별하지 않으신다.
구분, 구별, 차별은 하느님의 기준이 아니다.
그 주인은 세상의 기준을 뛰어 넘는다.
‘많이 받은 사람은 많은 것을 내어 놓아야 하고, 적게 받은 사람은 적게 내어 놓아도 된다.’고 하신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준다.
일한 만큼 주시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만큼 주시는 분이다.
^잃은 아들 되찾은 비유 - 행동
회개, 구원은 행동이다. 하느님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다.
마음을 바뀌는 것만으로는 회개가 아니고, 구원을 주지 않는다.
마음을 바꾸어 먹는 정도가 아니라 행동해야 한다.
아버지께서는 이미 용서하시고, 기다리고 계신다.
아버지 집으로 돌아와 잔치 상에 앉아야 한다.
<end>